낙서장

고양이의 첫사랑

아르비스 2011. 10. 22. 01:26
고양이가 처음 느낀 건 빨간 장미의 아름다움이 아닌 
장미가 풍기는 향기였습니다.
빨간 장미의 향기는
숨이 막힐 듯 강렬 했기에 눈을 뜨고 싶지 않았습니다.

장미를 알게 된 다음날부터
고양이의 아침엔 변화기 생겼습니다.
한 입도 베어 먹지 않은 닭다리도
고소한 참치캔도
고양이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.
아침에도
점심에도
저녁에도
온통 빨간 장미 생각이 머리속을 둥둥 떠다닐 뿐
다른 생각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.

배가 고파서 발이 움직이지 않고
지나가던 고양이가
말도 안 되는 시비를 걸며 싸움을 걸어와도 참으며
장미에게로 걸어갔습니다.
걸어가면서 고양이는
장미를 만나면 꼭 말하고 싶었습니다.

난 너랑 친구가 되고 싶어.
난 괜찮은 고양이는 아니지만
그다지 나쁜 고양이는 아니거든.
그리고
난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
지금... 그걸.. 하고 있는 것 같아..

빨간 장미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
바람에 날려오는 장미의 향기를 맡으며
빨간 장미를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면...
숨이 멎어 버릴 것 같은 그 향기도..
 
그때부터  고양이의 머릿속에는
하나의 강렬한 핀이 박혀버렸습니다.
그 핀은
고양이가 만든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
고양이는 그 핀을 스스로 빼버릴 수가 없었습니다.

그때부터였습니다.
고양이가 자신을 싫어하게 된 것은
밥을 먹다가도 자기가 싫었고
잠을 자다가도 자기가 싫었고
다른 고양이들과 어울리다가도 자기가 싫었습니다.

고양이가
장미 냄새와 비슷한 향기를 맞으려고
꽃집 앞에서 하루 종일 서성거려도
아파트 단지에서 처음 만난 장미 가시에 찔리면서
그 향기를 묻히며 기다려도
절대로 빨간 장미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.
그렇게..
빨간 장미를 기억하며..

당신을 처음 봤을때... 왠지 '우리'가 되고 싶었습니다.만

지금은.. 길량이가 되었네여. 
빨간 장미를 그리며...